"길이 막혔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가장 손쉽고 속 편하기로는 그 곳에 멈춰 서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길을 계속 가야 할 운명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몸 버릴 각오를 하고 진흙탕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물론 생각 밖으로 그 수렁이 깊을 수 있다. 그 때문에 길을 만들기는커녕 제 몸조차 빠져나오지 못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수렁 속으로 발을 집어넣어야 하는 사람의 운명의 가혹함에 대해, 나는 지금 생각한다.
실패를 예감하면서도 써야 하는 글이 있다. 실패에 대한 예감 없이는 쓸 수 없는 글, 자꾸만 연막을 치고 안개를 피우고 변죽을 울리고, 그러다 독백에 그치고 마는, 으레 그럴 줄 알면서도 부쩍 허약해진 소설을 끝끝내 붙잡고 있는 사람이 한 고비를 넘어가는 심정으로 감당해야 하는, 그런 글..
이 소설은, 말하자면 그런 유의 글이다. 나는 끊긴 길 앞에서 주저앉는 대신 수렁에 빠지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길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 미련과 집착이 나는 두렵다. 알 수 없는 허무감 같은 것이 나의 영혼을 운무처럼 둘러싸고 있다.
모든 소설은 허구이다. 그러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허구이다. 혼돈의 삶에 형태를 부여하기 위한 인공의 혼돈. 소설적 진실은 허구의 입을 통해서 말해진다. 소설을 쓰는 즐거움 가운데 중요한 것은 가짜의 인물, 가짜의 역사를 그럴듯하게 창조하여 생명을 불어넣는 데 있다. 그런 뜻에서 이 소설은 지어낸 것이다. 곧 허구이다.
그러나 모든 소설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라는 명제를 우리는 또한 기억하고 있다. 모든 소설은, 어떤 식으로든 글쓴이의 자전적인 기록이다. 소설을 읽는 즐거움 가운데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은밀함이다. 어떤 다른사람?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작가가 창조해 낸 가짜의 인물이다. 그러나 독자는 그 가짜의 인물, 가짜의 역사를 통해 비밀스러운 기쁨을 가지고 작가의 삶의 이력으로 읽히고 만다. 그런 뜻에서라면, 부인할 필요가 없다. 이 소설은 자전적이다.
앙드레 지드는 내게 말했다. “그대를 닮은 것 옆에 머물지 마라. 결코 머물지 마라.. 너의 집안, 너의 방, 너의 과거보다 더 너에게 위험한 것은 없다”
나는 말한다. `나는 일찍이 나의 집안, 나의 방, 나의 과거로부터 떠나고자 하였다. 그러나 위험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 작품 속에 살아 숨쉬는 인물들에게, 그리고 나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가공의, 그러나 마찬가지로 소중한 나의 인물들에게, 내게 빚지고 내가 빚진 나의 고향에게, 관계의 원천인 모성에게, 이 세상의 모든 드러나 있는 것들에게, 또한 모든 감춰져 있는 것들에게,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에게, 우리들 존재의 심연에 도사린 보이지 않는 더 큰 존재에게.”
- 이승우 Lee Seung-U, 생의 이면 The Reverse Side of Life 中 작가의 말